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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6 군사 정변
5.16의 발단은 정군 운동이었다.
혁명이라는 이름으로 김종필, 오치성, 김형욱 등
5.16 주체세력의 핵심 멤버 육사 8기생 9명이
분열된 상태로 무능한 국정운영을 펼치고 있는
민주당 세력을 제거해 군정을 수립하기 위한 목적으로
1960년 9월 10일 이른바 충무장 결의를 하면서부터 시작되었다
박정희를 정변의 지도자로 세우자는 데에 합의하였다.
박정희는 만주군관학교 인맥, 군내 인맥 등을 이용해
장경순, 한웅진, 채명신, 이주일 등 자신과 알고 지내던
육군 장성과 6관구 참모장 김재춘 등을 거사에 끌어들였고
김형욱 등이 육본에서 동지들을 작전참모로 추천하면
부관감실에서 근무하던 오치성이 인사발령을 내는 방식과
포섭한 동지의 인맥을 이용해 2차·3차 포섭하는 방식으로
제30사단, 제33사단장, 문재준과 6군단 포병단, 공수전단 등을 포섭해 나갔다.
이 과정에서 제1201야전공병대 포섭은 실패해였다
따라서 조직은 포섭될만한 이들을 중심으로 비밀스럽게 조직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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